디자인업계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리서치 방법 중 하나로 시각물 제작 업계 종사자 또는 이미 시도한 경험이 있는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기획했다. 생태친화적인 디자인에 관한 다양한 입장을 파악하고 현장에서의 고민을 한 발짝 더 깊게 들여다보고자 기획자, 제작자, 재료 유통업자, 디자이너로 구성하여 총 6명의 관련업계 종사자들과 2024년 7~8월까지 인터뷰를 진행했다.
<불모지장> 기획자 시리
인터뷰어 김예진, 신영은, 이화경
‘불모지장’은 불편한 모험을 통해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드는 장이라는 뜻으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비건 장터이다. 이 장터에서는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으며, 다회용기와 텀블러, 장바구니 등을 필수로 지참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삶과 자원 순환을 중시하는 이 장터에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 자원의 재사용과 업사이클링, 비건 생활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제품이 판매된다. 1인 여성 가구 대화모임의 ‘건강한 삶,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되어 2020년 전주에서 시작된 불모지장은 기획-운영-판매-구매 전 과정에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 함께 고민하고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가며 이런 경험들이 일상 속 실천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격려한다.
본인의 활동을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전주에서 활동하는 기획자 시리입니다. 2021년부터 쓰레기 만들지 않는 비건 장터인 ‘불모지장’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어요. 불모지장은 매년 2~3회씩 열리며, 올해 상반기까지 총 8회를 진행했어요. 또한, ‘쓰없축(쓰레기없는축제를위한전북시민공동행동)’에서 지역 축제를 모니터링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기획했던 친환경 행사를 소개해주세요. 이로 인해 얼마큼 환경적 효과가 있었나요?
불모지장은 쓰레기 만들지 않는 비건 장터로, 건강한 삶을 원하는 전주 지역의 1인 가구 여성들의 바람에서 시작되었어요. 환경에 대한 고민이 더해지면서, 건강하게 장을 볼 수 있고 쓰레기 배출도 줄일 수 있는 장터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죠. 판매자들은 상품을 무포장으로 준비해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구매자들도 장바구니와 다회용기를 꼭 챙겨오도록 안내해요. 또한, 소분 판매나 다회용기 대여 부스, 자원 순환 부스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홍보는 주로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루어지고, 오프라인에서는 포스터를 100장 이하로만 인쇄해 최소한으로 사용해요. 포스터는 콩기름 잉크를 사용하고, 종이 선택도 신중하게 하고 있습니다. 당일에 사용하는 안내물들은 사전에 동네에서 수거한 폐박스와 사용하지 않는 크레파스를 활용해 공간을 꾸미있어요. 한 번 쓰고 버려질 쓰레기에 새로운 쓰임새를 만들기 위해서요.
이런 친환경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을까요?
불모지장은 처음에는 '쓰레기 만들지 않는 장터'로 시작했지만, 점차 비건이라는 영역까지 확장하게 되었어요. 다양한 어려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들이 있어요. 첫 번째로는 '쓰레기'에 대한 고민입니다. 이 장터의 핵심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이 쓰레기인지에 대한 경계를 늘 논의하고, 행사 장소를 정할 때부터 깊이 고려해요. 두 번째는 ‘경험의 확장’입니다. 불모지장을 통해 사람들이 새로운 인식과 경험을 얻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어요. 세 번째는 ‘함께하는 기획자들의 가치와 지향을 유지’하는 일입니다. 외부의 시선이나 확산보다도,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향을 잃지 않고 함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그래서 불모지장과 비슷한 지향을 갖는 사람 또는 단체와 협력하려고 노력해요. 이것은 저희가 지치지 않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수익을 위해 타협해야 할 때가 있을 텐데 어떻게 해결하나요?
불모지장이 우리의 생계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협력할 단체를 찾고, 연대와 협업을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기도 해요.(웃음) 초창기에는 '어떻게 하면 이 장터가 우리의 생업이자 즐거움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시기도 있었어요. 하지만 다른 지역 어딜 보아도 장터 운영 자체가 생계가 되는 경우는 없었어요. 저희가 장터 안에서 판매를 안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각자가 일을 하면서 불모지장을 통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유무형적인 가치를 찾자고 제안해요. 예를 들면 기획자 중 모아는 제로웨이스트 숙소(모악산의 아침)와 누구나 운영자가 되는 커뮤니티 공간(지향집)을 운영해요. 여기에 불모지장까지 더해져 ‘모아’라는 사람의 캐릭터와 1인 브랜딩이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진아’라고 하는 친구는 불모지장에서의 캠페인이 환경 예술가로서의 방향성을 다지는 데 밑거름이 되었고요.
멋지네요. 결국에는 그 행사를 만드는 사람들이 엄청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쓰레기 없는 장터를 만들기 위해서 엄청 노력을 하지만 결국 쓰레기가 발생하잖아요. 이 행사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혹은 일회용 제작물이 있다면 행사 이후에 어떻게 처리하는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불모지장을 운영하면서 일반 쓰레기는 20L 봉투 하나도 가득 차지 않았어요. 그 이유는 애초에 일회용품을 반입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판매자는 기본적으로 무포장을 지향하고, 비건 요리 판매자는 현장에서 만든 음식물 쓰레기를 직접 가져가서 폐기 처리하세요. 다회용기를 사용할 경우 남은 음식은 담아가거나 현장에서 먹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어요.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시기에 부스 별로 마스크와 손 소독제 사용 안내문 용지를 배포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고 명찰 종이로 재활용 했어요. 현수막도 재사용을 조건으로 제작하고요.
어떤 방식으로 재사용하셨나요?
처음 사용한 불모지장 현수막은 애초에 폐현수막을 재사용해 만들었고, 회차가 거듭되면서 대형 현수막을 만들 때는 현수막에 날짜나 주최, 주관 정보를 넣지 않았어요. 버려지는 자투리천을 모아 현수막의 글씨로 사용하면서 8회차가 될 때까지 꾸준히 사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바뀌는 정보만을 따로 제작해서 박음질하면 현수막 자체는 계속 재사용할 수 있어요.
그럼 행사 이후에 남은 포스터나 현수막은 어떻게 처리하나요?
현수막은 모두 재사용 가능하도록 만들고 있고요. 포스터는 행사 후 100% 수거는 어렵지만, 가까운 장소에 붙인 것들은 다시 수거해 보관하거나 메모지로 사용하고 있어요. 일부 카페나 공간에서는 불모지장을 애정하고 지지하는 마음으로 계속 붙여 두기도 하고요.
축제에 방문한 시민에게서 쓰레기가 정말로 발생하지 않는지 의문이 들기는 합니다.
두 번째 장터에서 어떤 참가자가 뽑아 쓰는 일회용 비닐봉투를 가져와서 옆에 나눠주고 있었어요. 어떤 때는 가방에 있던 물티슈를 사용한다거나 캔 맥주를 가져오셔서 마시는 경우도 있었죠. 불모지장의 기본 취지는 기획자와 판매자가 발생시킬 수 있는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것이고, 발생한 쓰레기는 본인이 가져가는 원칙을 따르고 있어요. 만약 현장에서 쓰레기가 발생한 상황을 저희가 보게 되면 묵인하지 않아요. 기획자들이 직접 다가가서 여기까지만 사용하고, 꼭 가져가 달라고 정중히 안내해요. 조금 불편할 수 있지만, 장터 안에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축제를 즐기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있어요.
활동하다 보면 여러 가지 변수들을 만나며 팀 내에서 토론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러한 과정에서 팀의 정체성이나 논리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팀원이 몇 명인가요?
무척 동의하는 지점이에요. 첫 번째 불모지장은 2명이었고, 두 번째 장터부터는 4명이 함께 했어요. 다섯 번째부터 5명이었어요. 일곱 번째인 작년에는 저를 제외한 기존 팀원이 모두 빠졌어요. 새로운 기획단을 구성 했을 때 7명이었어요. 지금은 휴식기를 가지고 돌아온 기존 멤버 일부와 기획단 일부가 남아서 총 6명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불모지장에서는 기획자 외에 메인 스태프는 최소 10명 정도 필요해요. 준비부터 마감까지 약 9시간 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에, 이분들께는 인건비를 드리고 있어요. 그리고 자원봉사자는 오전·오후 파트를 나눠서 운영하고, 약 20~25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어요.
기획 과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동일한 미션을 공유하며 친환경 행사를 추진할 때 가장 어려운 점, 그리고 해결한 경험이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저희가 가장 많이 마주하는 분들은 판매자들이에요. 그분들께는 불모지장의 취지를 담은 안내문을 통해 판매 영역에서 지켜야 할 부분들을 명확히 전달하고 있어요. 하지만, 모두가 안내문을 꼼꼼히 읽고 숙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간혹 장터 당일에 일회용 비닐 장갑, 생분해 용기, 1.5L 페트병 사용을 목격하기도 해요. 그런 경우에는 모두 현장에서 수거합니다. 처음에는 판매 부스에서 일회용품이 사용되는 모습을 발견하고 무척 당황스럽고 화가 나기도 했어요. 하지만 여러 해를 거듭하면서 모두가 비슷한 정보와 이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게 됐죠. 한 번 더 안내하고, 한 번 더 체크하려고 노력해요. 올해도 판매자 안내문을 업데이트 했어요. 그리고 판매부스를 신청할 때 작성한 판매 품목 중 쓰레기 발생이 우려되는 제품들은 먼저 연락해서 조언을 드려요. 단체나 기관과 협업할 때는 행사의 중요 가치를 공유하는 과정이 판매자들과 공유하는 것보다 더 어렵기도 해요. 2022년 ‘전라북도 생태관광센터’와 협업할 때는 현수막에 ‘주최·주관·연도’ 기입에 대해 오랫동안 논의했어요. 행정은 주최·주관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라서요. 하지만, 일회용 현수막을 제작하는 거라서 저희도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었어요. 결국 주최·주관은 빼고 연도만 기입했어요. 광목천에 자투리천으로 바느질을 한 현수막이라 다음 해에 연도 숫자만 교체하면 돼요.
활동이 쌓여갈수록 협업하면서 만난 사람들이나 단체, 업체 등의 변화가 느껴지나요?
불모지장만의 성과라고 할 수는 없지만 2020년에 시작할 때만 해도 지역 내에 비건 가게나 제로 웨이스트숍이 거의 없는 상태였어요. 물론 지금도 생겼다가 없어지고 있지만, 한창 많을 때에는 제로 웨이스트숍이 3개까지 있었어요. 지역 내에 부분적으로 제로 웨이스트 물품을 판매하는 가게도 늘었고요. ‘전북특별자치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같은 곳에서는 다회용기를 활성화하는 사업이 굉장히 잘 꾸려지고 있어요. 그래서 분과 위원회도 만들어지고 축제에서 다회용기 사용을 어떻게 확산할 건지도 계속 논의 중이에요. 축제뿐 아니라 카페나 장례식장에서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움직임으로도 확장되고 있어요. 전주는 다회용기 사용 관련한 활동이 굉장히 활발한 곳이고 조례도 제정이 됐어요. 물론 조례 내용을 살펴보면 일회용품 금지가 아니라 다회용기 권장이기 때문에 아직은 한계가 있지만, 작년에 시의원의 적극적인 참여로 전주시 예산이 들어가는 행사에는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기로 조례를 만든 상황입니다.
일반적으로 행사의 아이덴티티, 정보를 안내하는 시각물이 모두 현수막인데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것 같아요.
일회성 축제도 많지만 요즘은 축제를 브랜딩하며 여러 회차 운영하기도 해요. 축제의 고유함을 유지하기 위해 아이덴티티가 될 디자인을 기본적으로 현수막으로 만들고, 계속 변경되는 정보는 벨크로로 대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축제 모니터링을 해보면, 현수막을 제작하지 않고 쓰고 지울 수 있는 칠판 방식의 이젤을 세워서 부스 간판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몰리면 이젤에 쓰인 부스 이름이 안 보이는 한계가 있어요. 괜찮은 예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역축제는 보통 반복해서 참여하는 업체가 많아서 현수막에 업체명만 적고 날짜와 행사명은 안 적어요. 여기에 부스 번호는 스티커를 붙인 사례도 있어요. 스티커만 바꿔가면서 현수막은 다시 쓸 수 있는 거죠. 불모지장에서는 폐박스, 폐목재를 활용해서 간판으로도 사용했고요.
불모지장에서는 현수막 대안으로 폐박스를 이용해서 행사 안내물을 만들고 계시죠. 행사장 내에서는 그 방법이 가능할 것 같은데 행사장 밖에 있는 사람들을 유입할 때의 사이니지는 어떤 걸로 하셨는지 궁금해요.
저희는 행사장 밖에도 폐박스를 활용해 사이니지를 만들어요.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사이니지로 사용한 폐박스도 모두 수거해서 다음 장터 때 재사용해요. 그리고 현수막은 광목천을 활용해서 제작하거나 어쩔 수 없이 제작한 현수막도 계속 재사용하고 있어요. 다만, 올해 5월에 진행한 불모지장의 경우 전주의 이팝나무 철길 행사와 맞물려 팔복예술공장 주변에 많은 분들이 방문했어요. 매주 약 6,000명 정도가 팔복예술공장을 다녀갔고, 불모지장이 열리는 날에는 일회용품 반입이 안돼서 재단 측에서는 민원을 고려해 장터의 취지를 설명하는 대형 안내문을 요청했어요. 처음엔 제작을 꼭 해야하나 고민이 많았지만, 이 기회를 통해 불모지장의 취지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제작비가 재단의 지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현수막을 제작했어요. 제작부터 설치, 철거까지 다 해주시는 업체를 만나서 얘기한 적이 있어요. 현수막 떼는 작업하고 나서 어떻게 처리하시냐고 여쭤봤는데, 비율은 모르지만 일부는 농어촌에서 가져가신대요. 밭에 현수막을 쭉 깔아서 멀칭할 때 쓴다고 해요. 혹은 플로깅할 때 쓰는 가방으로 업사이클링하기도 해요. 이런 순환 사이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수거 후 어디로 보내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계획이 세워지면 좋겠어요. 폐현수막을 재활용해서 다시 현수막으로 만드는 것은 잘 안 되고 있는 걸로 아는데 이 기술까지 상용화되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시리님이 생각하는 생태 친화적인 행사는 무엇인가요?
생명체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식할 것인지 본다면, 동물·식물·미생물 모든 숨쉬고 있는 대상들인데요. 그들이 살아가는 모양이나 상태를 존중하는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축제 전반적으로 생태 감수성을 바탕에 두고 기획을 하고 있는가가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산의 한계나 경험과 관련된 이해의 한계로 구현을 다 못할 수 있죠. 보통 관공서에서 만드는 친환경 축제들은 이름이 우선인 경우가 많아서 자전거를 타거나 쓰레기 하나 주워 오면 고체 치약과 칫솔 세트를 줘요. 그걸로 친환경 축제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식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획 및 주최 관계자들이 진지한 감수성과 고민을 가지고 하는 축제인지 아닌지가 제일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문제의식을 계속 가지고 있고, 활동이나 운동의 영역으로 풀어보는 것을 계속했던 사람이라서 좀 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게 돼요. 활동의 끝은 10년 뒤에 우리가 초대받는 자리가 안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게 당연하니까. 우리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이 목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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