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업계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리서치 방법 중 하나로 시각물 제작 업계 종사자 또는 이미 시도한 경험이 있는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기획했다. 생태친화적인 디자인에 관한 다양한 입장을 파악하고 현장에서의 고민을 한 발짝 더 깊게 들여다보고자 기획자, 제작자, 재료 유통업자, 디자이너로 구성하여 총 6명의 관련업계 종사자들과 2024년 7~8월까지 인터뷰를 진행했다.
<두성종이> 영업2팀 손지희 책임
인터뷰어 신영은, 이화경
디자이너에게 종이는 아이디어를 실체화하는 대표적인 재료이며, 썩지 않는 플라스틱 사인물의 대체물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재료이다. 하지만 탄소를 흡수하는 나무를 베어 만드는 종이가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FSC 인증을 받은 용지는 정말 친환경적일까? 가격이 합리적인 친환경 용지는 없을까? 이러한 궁금증으로 ‘두성종이’를 찾아갔다. 두성종이는 1982년부터 다양한 용지를 취급하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수입지 유통회사다. ‘종이의 명품은 두성종이에 있습니다’라는 콘셉트로 출발해, 5년 전부터는 ‘지구를 위한 더 나은 선택’이라는 슬로건으로 다양한 친환경 종이를 취급하고 있다. 판매뿐 아니라 기업, 디자이너, 제작자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전시와 워크숍, 세미나 등을 기획·운영하고 있다.
본인의 활동을 소개해주세요.
두성종이에서 근무한지 올해로 18년차이며, 현재는 영업2팀에서 책임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2년 전에는 ‘을지로 인더페이퍼’에서 소상공인, 출판 관련 종사자, 작가 등 영업의 손이 닿지 않는 분들에게 도움을 드렸고, 지금은 영업부로 자리를 이동하여 기업을 비롯한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있어요.
최근에 기후위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친환경 용지에 대한 사회적 흐름에 관해 말해주세요.
10~12년 전부터 환경에 대한 이슈가 생기면서 지금의 흐름이 생긴 것 같아요. 2010년 즈음 제가 논문 쓰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지금은 ESG(Environmental 환경, Social 사회, Governance 지배 구조)사업을 많이 하는데, 그때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 리포트를 많이 썼어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둘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었고 정말 많은 기업들이 CSR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사실 친환경이 포커스가 아니었어요. 사회 공헌이나 환원처럼 사회에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라는 것이 초점이었어요.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는 친환경 종이 문의가 많지 않았고 펄지(Pearl紙)를 많이 찾았어요. 종이도 인테리어나 산업 디자인처럼 유행에 민감하다고 생각해요. 가구 회사에서도 옛날에는 인쇄를 하면 선명하고 발색 좋은 인쇄를 선호했고, 현란한 포토샵 기술과 그러데이션이 들어간 디자인이 유행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푸석푸석한 느낌의 잉크가 착 먹는 종이(비도공지 紙)를 찾기 시작하더라구요. 예전에는 이렇게 나오면 (재생 종이에 찍힌 인쇄물을 보며) “왜 발색이 안 좋지? 평활도가 안 좋나?” 진하고 선명하게 나온 결과물만 인쇄가 잘된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인테리어 디자인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노출 콘크리트나 폐자재로 리/업사이클을 많이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비슷한 느낌을 지닌 러프한 질감의 친환경 재생지를 찾기 시작한 것 같아요. 물론 환경에 대한 현재의 사회적 이슈가 가장 중요하게 차지하는 부분이고요.
두성종이의 슬로건이 ‘지구를 위한 더 나은 선택’이더라구요?
‘지구를 위한 더 나은 선택’은 두성종이에서 지금 앞세우고 있는 슬로건이에요. 예전에는 ‘종이의 명품은 두성종이에 있습니다’ 콘셉트였다면, 요즘에는 친환경적인 콘셉트로 방향을 잡았어요. 슬로건이 바뀐 지는 한 5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수입지를 유통하다 보면 해외 시장 정보가 발빠르게 들어와요. 저희가 수입하는 제지 회사의 종이들은 다양한 친환경 인증 마크가 붙어 있어요. 그중에서도 FSC 인증 마크는 옛날부터 받아왔는데, 예전에는 디자이너들이 인식을 안 하다가 근래 들어 “FSC 인증 마크 있어요?”라는 질문을 많이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수요가 확실히 많아졌죠. 지금 두성종이가 취급하는 전체 용지 중에 80% 정도가 친환경 종이예요. 현재 디자이너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FSC 인증 마크예요.
종이를 제안하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동일한 미션을 공유하고 소통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면? 해결한 경험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요즘 디자이너들이 가장 많이 하는 추상적인 질문이 있어요. “재생지 뭐 있어요?” 그러면 스무고개가 시작되는 거예요. 패키지나 리플릿 등 용도에 따라 사용되는 종이가 달라져서 용도를 먼저 알아야해요. 고지(폐지)로부터 이물질과 잉크를 제거하고 섬유만 빼서 만들어진 펄프를 고지 펄프라고 하는데요. 재생지는 그 종류에 따라서 고지 함유 비율이 달라져요. 그래서 골판지 고지랑 잡지 고지는 주로 골판지 원지로, 신문 고지는 신문지 용지, 상질지 고지는 주로 인쇄용지로 재생산하고 있어요. 재생지의 사용은 쓰레기의 감량이나 산림 보호를 위해 상당히 중요한데 고지의 이물질 제거, 탈묵 표백을 위해서 다량의 물과 에너지, 화학약품을 사용해야 된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어요. 어떤 디자이너들은 재생지면 쓰던 거 모아서 만든 건데 왜 이렇게 비싸냐고 물어요.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이물질 제거를 위해서 많은 공정이 추가로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어떤 고객들은 “우리는 FSC 인증만 있으면 됩니다. 다른 건 상관없어요”, “고지의 사용도 중요하지만 그냥 저희 FSC 인증 종이 쓸게요”라고 하세요. 재생지를 사용할 때 한 가지 유의하셨으면 좋겠어요. 우유 팩, 신문, 잡지 등 재생펄프를 60~100% 비율로 배합해서 재생 고지를 만들다 보니, 로트별로 색상이 조금씩 달라요. 이러한 것들이 재생지의 한계이자 특징인데요. 디자이너들이 재생지에 관한 이해가 부족하면 기획사나 인쇄소에 클레임을 거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일정한 색감으로 인쇄가 되어야 하는 결과물은 재생지가 아니라 일반 인쇄 종이를 쓰셔야 합니다. 재생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 후 디자인을 하면 원하는 결과물을 만드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이를테면, 재생지에 전면 인쇄하는 경우에는 차라리 재생지 100%의 크리에이티브 보드(색지)를 사용하는 것이 나아요. 저는 디자이너분들과 다양한 결과물을 같이 보고 고민하면서, 공정을 조금 더 줄이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고 싶은데요. 환경에 도움을 주는 방법을 찾아 재생지를 사용하고 콩기름 잉크로 인쇄하는 인쇄소를 찾아가며 열심히 했는데 후가공 등 제작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버려요. 그리고 인쇄 감리 볼때도 색을 맞추기 위해 종이를 많이 사용하고 폐기처리되는 쓰레기도 많이 발생하니 안타깝죠. 종이에 대한 특성이나 물성을 이해하고 서로 공유하면 좋겠어요. 저는 디자이너분들에게 종이에 대한 정보를 알려드리고, 디자인에 대한 제작 정보를 받으면 서로 시너지가 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종이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좋은 종이에 또 합지하고, 후가공 위주의 멋부리기에만 치중한다면 비용도 더 들고 생태적으로도 안 좋잖아요. 재생지를 사용하면서 오염을 우려하여 라미네이팅을 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예요. 그런 제작물이라면 재생종이나 FSC 인증 용지처럼 질감이 살아 있고 가격이 높은 용지보다는 저렴한 종이를 사용하여 라미네이팅하는 게 합리적이에요.
디자이너들이 FSC 인증 용지를 많이 찾는다고 하셨는데 FSC 인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FSC 인증에는 넘버가 있어요. 브랜드 패키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넘버가 없으면 정식 FSC 인증을 받았다 얘기하기 어렵고, 신고당할 수 있답니다. FSC 넘버를 검색하면 어디서 제조했는지를 알 수가 있어요. FSC 인증을 받은 종이를 사용하면 FSC 인증을 받은 인쇄소에서 인쇄를 하셔야 돼요. 인증을 하기 위해 기획사와 그 회사와 연결된 업체까지 실사 조사를 하거든요. 인증을 받고 유지하기 위해 많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FSC 인증을 싫어하는 인쇄소도 있죠. 왜냐하면 요즘에 인쇄소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지 않으니까… 다들 경기도 어렵고 매년 일정 비용이 발생하다 보니 FSC 기관만 돈 버는 거 아니냐는 소리도 들립니다.
행사에 주로 사용되는 현수막, X배너를 대신할 용지가 있다면?
‘미네랄 페이퍼’와 ‘하이팩’을 추천드립니다. ‘미네랄 페이퍼’는 돌가루로 만들어 방수성과 내구성이 뛰어난 친환경 기능지로써 생산과정에서 물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 친환경적이며, 방수성이 뛰어나 지도 제작 등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새로 나온 ‘하이팩’은 방수성, 내구성, 통기성, 신축성이 뛰어나 다용도로 활용 가능하며, 사용 후 재활용 가능한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소재로 하드타입(종이 질감), 소프트 타입(천 질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얇고 가볍지만 인장강도가 높아 질기고 쉽게 찢어지지 않고 자외선, 습기 등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습니다. 실외용 배너, 지도, 공연 및 행사용 손목 밴드로 사용됩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생태 친화적인 디자인은 무엇인가요?
개인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작 과정에서부터 진정으로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디자인이 무엇인가 고민하는게 우선인 것 같아요. 이를테면, 전면 인쇄보다는 색지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죠. 왜냐하면 원하는 색감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잉크도 조색해야 하고 인쇄 감리하는 과정에서 많은 파지가 발생하게 되잖아요. 물리적인 비용뿐 아니라 디자이너와 인쇄 기장님의 시간도 낭비되고요. 이렇게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질적, 비물질적인 비용을 생각하면 개인의 만족만을 채우기 위한 디자인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디자이너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면서 프로젝트를 성사시켜야 하고, 시중에 시판되기까지 담당하는 몫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요. 결국 디자이너의 의견과 태도가 결과물로 세상에 나오는 거잖아요. 디자이너분들이 디자인 재료에 대한 흐름과 특성을 파악하고 관심을 가지며 관련 업계 종사자들과 꾸준히 소통하면 좋을 것 같아요. 예쁘기만 한 디자인을 넘어, 예뻐서 버려지지 않는 디자인, 간직하고 싶은 디자인이야말로 생태 친화적인 디자인인 것 같아요.
친환경 용지를 활용한 시각 제작물 중 흥미롭거나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다면?
지금 생각나는 곳은 디자인 스튜디오 ‘그레이프랩(grape lab)’인데요. 종이로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곳이예요. 대표적인 디자인으로는 친환경 멀티 거치대 '지스탠드(g.stand)'가 있어요. 김민양 대표는 주요 재료인 종이에 관심이 많으셔서 종이 회사 직원보다 종이를 더 많이 알고 계세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저희한테도 물어보고 해외 사이트도 찾아보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세요. 또 한곳이 있다면, 친환경 화장품 기업 ‘톤28(TOUN28)’이에요. 국내에서 처음으로 화장품 패키지를 플라스틱 용기가 아닌 종이 패키지로 상용화하셨죠. 대부분 화장품이 액체류여서 종이 내부 쪽은 코팅이 되어야 한다는 점까지 고심하시던 박준수 대표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제품의 세밀한 부분까지 정말 진정성 있게 고민하는 기업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해외 사례로는 영국의 ‘낫플라(Notpla)’라는 기업을 소개드립니다. 낫플라의 모든 제품은 생산과정에서 버려진 해조류를 사용해 만들어졌는데요. 2019년 런던에서 열린 마라톤대회에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플라스틱 물병대신 해조류로 만든 식용 물캡슐이 처음 등장하며 이목을 끌었습니다. 이 식용 물캡슐은 물을 마시면서 패키지까지 함께 삼키는 방식입니다. 식용유나 올리브유 등도 담을 수 있고요. 패키지의 원료인 해조류를 얻기 위해 유럽에 있는 해조류 연합과 해조류 양식장이 협력하여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두성종이에서 탄소 중립을 실천할 수 있는 단계와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수입지를 유통하는 종이 회사의 본질에 맞게 해외 동향을 보다 빠르게 파악해 디자이너들에게 좋은 친환경 종이를 소개하고 유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 ‘파비니(FAVINI 社)’에서 개발한 종이 중이에 과일, 올리브 등 유기농 농산물의 부산물을 15% 함유한 비목재지인 ‘크러쉬’라는 종이가 있고요. ‘리핏’이라는 섬유 찌꺼기로 만든 종이도 있어요. 이탈리아가 섬유 산업이 크다 보니 섬유 폐기물이 많이 발생이 되잖아요. 이런 섬유 재활용 종이들을 두성종이에서 수입하고 있고, 현재 의류용 태그나, 리플릿, 띠지 등에 활용되고 있어요. 제가 수입지 유통회사에 근무해서가 아니라 해외 종이가 우수함의 정도를 떠나서 국내 제지회사보다 조금 더 앞서서 만들고 있다는 것을 느껴요. 사실 경쟁사들에도 좋은 종이가 많지만, 쓰임새에 맞는 종이를 연구하며 좋은 종이를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진정성있게 돕고자 합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두성종이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써 책임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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