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업계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리서치 방법 중 하나로 시각물 제작 업계 종사자 또는 이미 시도한 경험이 있는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기획했다. 생태친화적인 디자인에 관한 다양한 입장을 파악하고 현장에서의 고민을 한 발짝 더 깊게 들여다보고자 기획자, 제작자, 재료 유통업자, 디자이너로 구성하여 총 6명의 관련업계 종사자들과 2024년 7~8월까지 인터뷰를 진행했다.
<공공디자인이즘> 대표 허진옥
인터뷰어 이화경
‘공공디자인이즘’은 2013년에 설립된 사회적 기업으로, 디자인을 통해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공공 디자인 리빙랩 스튜디오다. ‘디자인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친환경적인 디자인과 지역사회의 참여를 유도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활동으로 폐기되는 현수막을 친환경 소재로 대체하고, 이를 업사이클링하여 가방이나 휴대폰 거치대 같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 있다. 행사를 진행할 때 빠질 수 없는 제작물을 어떻게 친환경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 직접적으로 들어보고자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기획부터 제작에 이르기까지의 경험담을 가감 없이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본인의 사업을 소개해주세요.
공공디자인이즘은 2013년도 사회적 기업가 육성 사업에 선정되면서 시작되었어요. 처음부터 환경적인 미션을 내세우는 회사는 아니었고요. 그 전에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대부분의 공공 디자인이 일회성으로 만들어지는 모습들을 보았고, 보다 지속적으로 활용되는 공공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창업하게 되었습니다.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시민 단체와 협업을 많이 했는데, 그중에서도 ‘환경운동연합’이나 ‘녹색환경지원센터’ 등 환경적인 의미를 주로 담고 있는 곳들과 지속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래서 공공 디자인으로써 캠페인이나 행사를 주로 기획하고 제작하면서도 창업 초기부터 “어떻게 하면 일회용품을 덜 써볼까, 종이 인쇄물에 코팅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와 같이 자연스레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초반에 작은 행사를 할 때는 20L 쓰레기봉투 하나로 폐기물 처리가 끝났는데, 저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확장되면서 행사 규모도 커지고 나중에는 부스 30~40개 규모가 되니까 1.5톤 화물차에 폐기물을 실어 가게 되더라구요. 이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끼던 와중, 창업 5년 차에 회사의 비전이나 미션을 리빌딩하는 대대적인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회사의 전 직원이 환경적 가치를 내포하는 근무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공공디자인이즘의 비전과 미션에 환경적 가치를 포함시켜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가치를 확장하자고 결정하면서 2018년부터 제조업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크게 커뮤니티 디자인과 친환경 제작 두 가지입니다. 커뮤니티 디자인은 지역 주민들과 공동체를 구성하고 함께 지역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활동입니다. 이 과정에서 정말 많은 디자인 결과물들이 나오는데 그걸 친환경적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제작에도 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 결과 친환경적인 소재로 현수막이나 부스 등 제작물을 만들고 있으며, 쓰임을 다하면 수거해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드는 것까지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떤 친환경 제작물을 만드셨나요?
처음에는 현수막 없는 축제를 기획했어요. 일반적으로 현수막은 재활용이 안 되는 소재인 데다가 너무 일회성으로 쓰이는 제품이잖아요. 그래도 아예 없을 순 없어서 종이 여러 장을 출력한 뒤, 연결해 붙여 현수막 대용으로 썼었어요. 행사에 참여한 주민들도 기획 의도에 공감을 해주어 의미 있는 시도였어요. 그런 시도들과 고민을 통해 지금의 친환경 제작 시스템이 갖춰졌습니다.
이런 의미를 수치화해본 건 2020년부터입니다. 공공기관이나 단체와 작업하면서 보고서를 써야 할 일이 생기다 보니, 공공디자인이즘의 작업 성과를 사회적 가치, 환경적 가치, 경제적 가치로 수치화하게 되었어요. 저희가 만드는 현수막이 순환되는 과정을 예로 들면 이렇습니다. 일반적인 3m 현수막 한 장을 다시 수거해서 파우치를 만들면 12개가 나와요. 파우치 12개를 만드는 데 어르신 3분이 1.5시간씩 일을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단가 측정도 하고 저희가 1년 동안 만든 현수막을 다시 수치화할 수 있는 공식이 나오더라구요. 저희도 설명하기 편리하고, 보시는 분들도 환경적 가치뿐 아니라 자원 순환이나 사회적 가치에 대해서도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도록 여러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제작 과정도 친환경적이었나요?
직접 제작까지 하게 된 계기가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기 위함이었어요. 처음에는 디자인만 하고 제작은 다른 곳에 맡겼는데, 우리가 하고 싶은 물건을 만드는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타이벡 같은 순환되는 소재를 사용할 수 있는 기계를 구비해 제작하고 있습니다. 현수막을 수거해 세탁할 때는 지역 내 자활 기업과 협업해 세제가 아닌 EM을 풀어 세척하는 등 제작 과정 전반에서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에코보드 같은 경우에도 기존의 골판지는 본드가 많이 쓰여 재활용이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저희의 기준에 맞는 보드지를 찾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용한 이후에도 저희가 제작한 현수막은 최대한 수거해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만들고 있고, 에코보드의 경우 지역의 종이 수거 업체로 보내 다시 골판지로 제작될 수 있도록 순환 구조를 신경 쓰고 있습니다.
친환경 물품을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오래 쓸 수 있는지, 그리고 쓰임이 다 했을 때 선순환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처음 종이 제작물을 고민했던 건 종이 자체가 친환경적이라기보다는 종이는 다시 원료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현수막도 PLA와 타이벡 소재를 사용하는데, 사실 저희는 타이벡으로 제작하는 것을 훨씬 더 선호하고 먼저 제안드려요. 왜냐하면 타이벡은 현수막으로 한 번 사용 후에도 제품화시킬 수 있는 여지가 너무 풍부하고 좋아요. 소재를 좀 잘 아시는 분들은 “타이벡도 결국에는 플라스틱 아니에요?” 이렇게 물어보시는데 타이벡은 방수나 통풍 기능이 좋고, 다시 사용하는 가방으로 만들었을 때 일반 현수막으로 만든 제품보다 소구력이 있더라구요. 일단 우리가 아무리 가치 있게 만든다 하더라도 기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경제적 이익이 발생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친환경 인증에 대해서도 많이 물어보시는데, 저희는 생태적인 제품이라고 이야기해요. 업사이클링한 제품은 친환경 인증을 받기 어려울뿐더러 아무리 친환경 인증을 받았다 해도 원료화시키는 과정에도 에너지가 드니까 생산된 재화를 한 번 쓰고 버리는 것보다는 그 전에 최대한 여러 번 사용한 후 분리수거가 되어 다시 원료가 되는 것이 제일 이상적이라 생각합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동일한 미션을 공유하면서 친환경 제작물을 만들 때 그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면? 해결한 경험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우선 대중화를 위해 처음부터 가격을 많이 낮추어 서비스를 제공했어요. 하지만 일반적인 현수막 제작 시장과 비교했을 때 가격 경쟁력에서 따라갈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서 저희처럼 친환경 제작물의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심어주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환경적 가치를 수치화한 것처럼요. 그리고 무엇보다 지속적인 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저희는 현수막을 다시 수거해 파우치로 업사이클하는 등 제품 생산 이후 2~3번의 사이클이 더 생기기 때문에 2021년도부터 주문 건에 한해 협약 단계를 거치고 있습니다. 저희 내부적으로는 단순한 거래가 아닌 동등한 파트너십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친환경 메시지에 공감해 협약을 거쳐도 어쩔 땐 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일회용품을 쓴다거나 제작물이 바로 폐기되는 문제가 생길 때도 있죠. 그럴 때는 피드백을 확실히 전달하는 편입니다. 기획 단계에서 계획했던 것들, 실행이 안 된 것들, 그로 인해 생겨난 리스크 등을 정리해서 서로 공유합니다. 이런 부분에서는 좀 고집스러워져야 한다 생각해요. 내부적으로도 일회용품 반입 금지 등 원칙을 정하고 지표를 가지고 스스로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일회용 제작물을 줄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규제, 태도, 가이드 등)
바로 그걸 제안하는 게 디자이너의 역할이라 생각하고 창업을 시작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소비자 주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이런 시장의 흐름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에게 환경적으로 영향이 적고 순환이 가능한 제품을 제안할 때 그 제안들이 와닿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디자이너의 역할이잖아요. 그만큼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리빙랩’을 만들게 되었는데요. 이곳을 통해 종이 제품들이나 다양한 업사이클 제품들이 나오고 있어요. 현재 공공디자인이즘 공간 1층은 리빙랩 공간으로 활용되며 지금까지 헌 옷 리사이클링 클래스를 열거나 지역의 대학생들과 문제를 발견하고 소재 채집을 통해 버려지는 자원들을 찾아서 다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지역의 복숭아 농장과 협업하여 플라스틱 없이 종이만으로 복숭아를 안전하게 포장할 수 있는지 연구한 것이 그 예입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생태 친화적인 디자인은 무엇인가요? 제작자로서 생태 친화적인 디자인을 실천한다면 어떠한 방법이 있을까요?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순환 구조를 가지는 디자인입니다.
디자인을 결과물로 이야기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생필품부터 살고 있는 집까지 전부 포함되는데, 한 번 쓰고 버릴 수밖에 없는 건 쓰지 않아야겠다 생각해요. 위생용품처럼 한 번 쓰고 버릴 수밖에 없는 것도 있지만, 결국 소각장에 갈 텐데 최소한 환경 유해 물질이 나오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거죠.
소재를 선택할 때 이런 부분들을 고려합니다. 쓰이는 환경과 장비 호환성도 고려해야 하니 고민이 많아요. 제품을 만들고 남는 타이벡을 판재로 만든다거나 에코보드에 쓰일 골판지를 찾아다니는 등 지금도 계속 소재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 지켜보거나 참고하고 있는 생태 친화적인 국내/해외 사례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송파구새활용센터’와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가 설비를 잘 갖추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단순한 전시관이 아니라 업사이클 제품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고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서로 협력하여 활동할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제주도도 여러 친환경 메시지를 가진 행사가 많이 열리고 있어서 부러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제작자들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생태적인 행사를 위한 디자인 가이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관점과 방향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최근 다른 곳과 작업하면서 NCS(국가직무능력표준, National Competency Standards)를 접하게 되었는데요. 전체 작업을 5~6단계로 나눠서 기획부터 리서치, 결과물이 나오는 과정까지 파편적으로 업무를 분담하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업무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디자이너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서치력이 좋고, 누군가는 기획자가 되고 싶어하고, 누군가는 시각화 작업에 탁월하죠. 그래서 저마다의 포지션을 찾고 호흡을 맞추는 과정이 필요한데 말이예요. 결국 스스로가 소비되지 않으려면 사회에 공헌하면서 사회적인 역할을 가지고 있는 디자이너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의 업무나 역할을 축소시키지 않으면서, 기획부터 제작까지 전반적인 과정에 걸쳐 디자이너가 어떤 철학이나 정체성을 고려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내용들이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대표님이 가이드를 활용한다면, 어떤 내용을 기대하시나요? 생태적인 행사가 확장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중요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북(e-book)처럼 쉽게 노출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특히 검색에 잘 걸릴 수 있어야겠죠. NGO들과 협력할 때 디자이너와의 소통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느꼈었는데, 그런 부분도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환경에 덜 영향을 미치는 방안을 여러 가지 제시하는 거죠. 예를 들어, 전기나 태양광 에너지를 활용하고, 다회용기 세척장을 마련하는 등의 방법이 있습니다. 또한, 지역 내에서 활동이 밀집되면 자원을 훨씬 절약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해 지역 내 수요 조사를 통해 거점 공간을 마련하는 활동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의견입니다. 현재 제작물에 있어서는 대형 산업체 아니면 공방으로 이분화되어 있는데 더 많은 시도들이 생기며 이런 구조를 변화시키는 활동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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