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업계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리서치 방법 중 하나로 시각물 제작 업계 종사자 또는 이미 시도한 경험이 있는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기획했다. 생태친화적인 디자인에 관한 다양한 입장을 파악하고 현장에서의 고민을 한 발짝 더 깊게 들여다보고자 기획자, 제작자, 재료 유통업자, 디자이너로 구성하여 총 6명의 관련업계 종사자들과 2024년 7~8월까지 인터뷰를 진행했다.
<더커먼> 대표 강경민
인터뷰어 이화경
강경민은 ‘더커먼(The Common)’의 창립자이자 대표로, 시각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지속 가능한 삶을 실천하는 공간인 ‘더커먼’을 운영하고 있다. 2020년 대구에 오픈한 더커먼은 Mankind is kind라는 슬로건 아래 제로 웨이스트와 비건 라이프 스타일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환경과 관련해 디자인부터 소규모 행사, 전시, 플리마켓까지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디자이너로서 생태적 행사를 제작하는 방법을 질문했다. 강경민 디자이너는 개인의 작은 실천이 모여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모임, 워크숍, 강연 등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지속 가능한 삶의 중요성을 전파하고 있다.
본인의 사업을 소개해주세요.
가장 최근에 진행하고 있는 것은 <기후 위기 보험 프로젝트>입니다. 올해 초, 서울에 위치한 ‘다팜’이란 공간에서 보험 설명회 콘셉트의 전시를 진행했었는데요. 이후로 연계할 지점을 찾다 경북대학교에서 제안이 와서 7월 16일부터 3개월간 <우리라는 이름의 바다>라는 기획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아까와 가게>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대구 녹색소비자연대와 함께 만들었던 지도인데요. 대구 안에 있는 저탄소를 실천하는 가게들을 아카이빙하고 싶다는 요청이 와서 기획부터 함께 진행했었어요.
이런 식으로 더커먼을 제외하고서라도 환경 이슈나 동물권 등 제가 관심 있는 주제에 한해서 외주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잠정적으로 중단했지만 기억에 남는 작업은 2022년도에 진행했던 <푸르르른>이라는 행사예요. 사람들이 ‘대구’ 하면 많이 떠올리는 <치맥 페스티벌> 대신, 지속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축제가 대구의 대표 축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한 행사였어요. 참여자들의 반응도 좋고 재미있었지만 예산과 인력의 한계를 느껴 아쉽지만 현재는 진행하지 않고 있어요.
본인이 디자인했던 친환경 제작물을 소개해주세요. 이로 인해 얼마큼 환경적 효과가 있었나요?
프로젝트의 성격이 있다 보니 단가가 조금 더 높아도 친환경 재생지를 사용하고 콩기름 인쇄, 리소 인쇄를 활용해 제작물을 만들고 있어요.
<아까와 가게> 같은 경우에도 그렇게 제작을 하고 결과물에 이 부분을 명시해두었는데요. “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보통 환경적 효과 역시도 정량적 수치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는데요.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 환경에 긍정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결국 사람의 인식 변화가 제일 중요하고, 이것이 급진적으로 뭔가 변화시킬 수 있는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개개인의 인식이 변해야 정치도 변하고 기업도 변하는 거잖아요.
가령 우리가 이 리플릿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무 한 그루 아낀다 하더라도 다른 한편에서는 무분별하게 종이가 낭비되는 상황들을 많이 보게 되어요. 이렇게 수치나 물리적인 것에 집중하다보면 무기력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제작물 곳곳에서 이런 노력을 메시지로 알림으로서 보편적 가치에 대한 인식 변화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수치화보다는 시각화를 통해 어떻게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킬지 더 중점을 두시는 것 같아요. 마침 더커먼 공간을 리뉴얼 중이라 알고 있는데,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생각하시나요?
더커먼은 환경이란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공간이고, 소분 숍이라든지 제로 웨이스트, 비건 등과 관련한 문화를 확산시키고 싶어 만든 공간이었는데, 지금까지의 방식은 뭐랄까, 문턱이 너무 높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예전에 라디오에서 더커먼 관련해 인터뷰를 하다가 “청취자들에게 가장 하기 쉬운 환경 실천 하나만 말씀해주시겠어요?”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는 거예요. 자세히 기억이 안 나지만 어떤 걸 실천해보라고 얘기했는데, 진행자께서 너무 어렵게 느껴질 것 같다고 하시면서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건 어때요? 수를 모르는데 곱하기, 나누기 이런 것부터 가르쳐주면 이해가 안 되듯이 숫자부터 가르쳐줘야 되지 않을까요”라고 비유를 들며 얘기하시는 거예요. 제가 약간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어요.
제가 더커먼 식구들의 기준에서 설명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환경에 관심도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쉽게 이야기를 풀어야 하는데, 우리 가게에 왔을 때 눈앞에 가장 먼저 보이는 게 벌크 숍이거나 플라스틱 수거함이라면 초심자에게 단계가 너무 높은 거죠.
저희 슬로건이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할 수 있어요.’, ‘Mankind is Kind’예요. ‘다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더커먼은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일단 공간에 장벽없이 들어올 수 있도록 순서를 좀 바꾸고 있어요. 처음에는 창가에 벌크숍이 있으면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호기심으로 공간에 찾아올 줄 알았는데, 현실은 처음 보는 물건이라 들어오기 주저하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익숙한 카페, 소품 숍처럼 보이도록 배치를 바꾸고 있어요.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동일한 미션을 공유하고 친환경 제작물을 만들 때, 디자인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면? 해결한 경험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지금 <기후 위기 보험> 전시 준비하고 있는 경북대 미술관 같은 경우를 예로 들자면, 기획 전시 자체가 환경을 이야기하는 거다 보니 내부에서도 전시 집기를 재활용하는 등의 많은 고민을 하는 것이 느껴졌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협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제가 그분들이 얼마큼 노력하는지 아니까, 그거를 더 완벽하게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엄청 밀어붙이거나 고집을 피우지 않았어요. 그리고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메시지를 꼭 넣어서 전달하자 생각했죠. 예를 들면, 전시장에 있는 흰색 가벽 위에 전면 시트 시공을 하자고 하셨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디자인할 때 아예 아래쪽을 흰색으로 반 정도 거의 비웠어요. 처음에는 좀 어색할 것 같다고 하셨는데 내부적으로 논의해보시더니 그렇게 하자고, 그게 더 좋을 것 같다고 얘기하시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조율해나가는 것 같아요.
<기후 위기 보험> 인쇄물 같은 경우도 초반 기획 회의할 때 “신문 종이 같은 재생지를 쓰자”고 얘기했는데, 디자인을 하면서 결과물이 콘셉트에 얼마나 충실할 것인가를 생각했을 때 선택해야 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기존에 생각했던 보험사 콘셉트를 생각했을 때, 신문용지보다 광택이 있는 아트지 느낌의 종이가 맞겠다고 직관적으로 판단한 거죠. 그래서 재생지 중에서도 아트지 느낌이 나는 종이를 선택하고 결과물에 재생지를 사용했다는 정보를 표기했어요.
지금은 친환경적인 면에만 국한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디자인 결과물을 낼 때 여러 관점에서의 조율 과정이 있잖아요. 그렇게 타협하고 조율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한 거죠.
일회용 제작물을 줄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규제, 태도, 가이드 등)
<기후 위기 보험> 프로젝트 당시에 명찰을 제작하고 싶었어요. 보험 설계사 콘셉트에 충실하기 위해서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명찰은 플라스틱이고, 굳이 만들게 되는 쓰레기가 될 수 있잖아요. 고민 끝에 생각해낸 게 스티커를 명찰 사이즈로 만들어서 안 쓰는 카드나 버리는 카드에 붙여서 명찰처럼 사용할 수 있게 제작하는 방법이었어요. 요즘 모바일 페이를 많이 쓰니까 안 쓰는 멤버십 카드 같은 것들 하나씩 있으실 거라 생각해 기존 카드를 재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거죠. 이런 식으로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냥 “이런 건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는 거예요. 예를 들면 음식이 필요한 행사일 때 꼭 접시가 필요하지 않은 음식으로 구성을 한다든가, 접시가 필요하다면 일회용이 아닌 다회용기, 혹은 뻥튀기를 접시 대신으로 사용해본다든지.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해보는 거죠. 기획 단계에서 그런 고민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상상을 많이 하거든요. 행사에 쓰인 것들이 행사 이후에 버려지는 장면이나, 이게 버려지고 나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상상이요. 재활용할 수 있는 것들도 일반 쓰레기로 또 버려지겠지…. 스트레스 받지만 그렇기 때문에 기획 단계에서부터 치열하게 고민하게 돼요. 재활용 과정이나 업사이클링 디자인에 드는 비용이 비쌀 수밖에 없는 게, 결국엔 품이 더 많이 들어가고 사람 손이 한 번 더 가야 되는 것들이라 그런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주어진 시간이 촉박하다거나 예산이 한정적이라면 생태 친화적인 행사를 진행하는 게 어려운 것도 이해돼요. 보통 행사에서 이런 움직임이 일어나려면 행사를 주최, 주관하시는 분들의 인식이 중요하니 이 가이드가 그분들에게 가닿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흥미롭게 지켜보거나 참고하고 있는 생태 친화적인 국내/해외 사례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추천할 만한 책은 『우정의 언어 예술—기후 위기 시대 예술로 공존하기』 입니다. 해외 및 국내 환경 프로젝트 사례를 아카이빙한 책으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밀라노 근처에서 열린 <테라포마 페스티벌(Terraforma festival)>은 음악 페스티벌인데 환경 메시지를 강조하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국내 시각 디자인 업계와 제작 과정에서 탄소중립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리고 탄소중립 실천을 위해 필요한 지원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다시 시각화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많이 필요하다 생각해요. 예를 들어 환경을 위해 생략한 것들조차 따로 표기해야 사람들이 그 노력에 대해 알 수 있으니까요. 이런 부분을 필수로 고민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들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생태적인 행사를 위한 디자인 가이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관점과 방향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디자인 결과물을 만들 때 특히 종이를 자주 사용하게 되는데, 종이의 종류, 인쇄소 등 실질적 정보를 찾기가 불편해서 가이드를 통해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자주 찾아볼 것 같아요. 디자이너와 기획자들이 사회적 역할과 사명감을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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